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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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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향의 관한 이야기 “한국의 향”
작성자 teais.com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08-06-20 23: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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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88

 향의 관한 이야기    “한국의 향”

한국에서의 향의 흔적은 이미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군 신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여러 용어들은 이미 제례를 통해 향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정확한 명명이 없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다. 

그리고 불교가 전래된 약 AD 3~5세기경 이후부터 상당한 향의 기록들이 발견된다.

신라 눌지왕 때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했다는 묵호자의 신라 불교 선교에 관한 기록은 향을 통해 이루어진다.

양나라 사신이 전한 진귀한 물건을 몰라 수소문하던 중 모레의 집에 숨어 있던 묵호자가 “이름은 향인데 그것을 불에 태우며 삼보에게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된다.(신성에 정성이 통한다.)”고 말하였다 한다.

 

또한 마침 왕녀가 병이 들어 왕이 묵호자를 불러들어 향을 피우고 기도하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선 고구려의 침공을 받은 신라의 김유신이 보검을 가지고 깊은 산속에서 향불을 피워 하늘에 맹세하고 기도하자 하늘에서 광채가 드리웠다고 전한다.

 

신라에 대한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신분의 귀천에 구애없이 주머니에 향로를 담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애향 문화는 불교의 전파와 당나라와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널리 파급되게 된다. 고구려 쌍영총 고분 벽화에선 동쪽 벽의 아홉 사람 중 맨 앞의 소녀가 향로를 머리에 이고 두 손으로 맞잡아 걸어가고 있는 데 그 위엔 세 줄기의 향연이 피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후 왕 및 귀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황금 요대의 갖가지 장식품 가운데에는 향낭, 토기 향유병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려에서도 서기 1123년 송나라 사람 서긍이 고려 왕실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겼는데, 그에 따르면 궁중에서 사향, 독누향, 용뇌향, 전단향, 침수향 등을 사르며, 30근의 은으로 만든 자모수로는 높이 4자, 너비 2자 2인치이며 커다란 짐승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양이라고 적고 있다.

이 작은 짐승은 움켜쥐는 형상으로 뒤돌아 보며 입을 벌리고 잇는데, 그 입으로 향기를 냈다고 한다.

중국의 문서에도 그 기록이 있지만, 향기 나는 의복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박산로라는 도구가 있는데 밑에 분이 있고 파도치는 바다에 물고기와 용이 출몰하는 형상인 이 박산로는 습기와 향기가 혼합하여 향연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의 귀부인들은 서양과 달리 몸에 향유를 바르거나 예쁘게 치장하기 보다는 향낭을 이용하여 차고 지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수가 많을 수록 귀한 것이었으며, 이를 이용해 위급시 치유목적으로도 사용하였을 것 같다.

또한 향초를 하얀 모시 천에 싸서 이를 베고 자는 베게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고려사에 보면 만전향이라는 것이 있고, 고려가요에 '만전춘별사'에는 약든 가슴을 맞춘다는 대목이 있다.

 
 
특히 유교 중심의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향의 사용이 더욱 발달하였다.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선비들은 독서를 할때나 시를 지을때 으례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 향을 향로에 지피곤 하였으며, 부부 침실에 사향을 사르고, 나향의 촛불을 켜서 분위기를 돋구었고, 남녀 구별없이 향낭을 패용하였으며,단순히 의복에 향료를 뿌리는 것만이 아니라 향수에 머리 감고 목욕하는 훈목관습도 있었다.
 
유교식 전통혼례을 '삼서 육례'라고 부르는데, 이는 전안청에 따로 차린 향로 앞에서 신랑 신부가 백년 해로를 서약했다.
 
제일먼저 하늘에 절하고, 다음으로는 신랑 신부가 서로 절하며, 마지막으로는 어른들 앞에서 서약하였다. 불교식 혼례에서도 신랑 신부가 '오분향'을 사름으로써 의식이 시작되었다.

또한 임금의 교지를 받을때 반드시 향을 사르고, 사약을 받을때도, 춘하대제등 국가적인 행사때도 전향사를 통해 향을 사르거나, 전향별감을 통해 지방에 향을 보내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는 항상 침향을 사르고, 임금이 설날 아침에 벽온단 한 심지를 살라 일 년 내내 평안하기를 기원하였다.
 
 
회춘을 목적으로 향을 복용하였다고 하는데, 특히 기생들은 향을 복용함으로써 인기가 높아졌으며, 궁중에서는 향낭 각시를 따로 두었다고 하며, 심지어는 사향노루를 궁중에서 직접 사육하였다고 한다.

규합 총서엔 다음과 같이 향 제조법이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무릇 향을 화합함에 그 질거나 되기를 알맞게 하기가 무척 힘들다. ....향을 고루 섞어 그릇에 담아 종이로 굳게 봉하여 집안 땅을 세치 혹은 너댓치 파고 묻는다.
 
한 달이 지난 뒤에 꺼내면 그 향내가 기이하다" 신흠의 "상촌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깊은 산중에 고상하게 깃들여 살자니 화로에 향 사르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벼슬에서 물러나온 지도 오래 되었으니 쓸만한 물건이란 하나도 없다. 늙은 소나무와 잣나무 뿌리와 가지, 잎, 열매를 취하여 절구에 찧은 것에 송진을 깍아 긁어 한데 섞어서 진을 만들어 두었다가 한 알씩 사르면 청고함을 얻을 것이다."
 
 잣을 오각향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는 솔과 잣을 섞었다고 하는 걸 보면, 옛날 사람은 그런 향을 좋아한듯 하다.

또 최익현의 "면암집"에는 "그 향기가 널리 퍼져서 위로는 신명이 음향하고 아래로는 악취를 제거할 만하여, 이를 제대로 갖추어 가차를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우기 품위에 따라 냄새가 다른데 어진 이가 사는 방에서는 난향이 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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